브라질 에스토마고 2007년 개봉작 원제 Estomago 에스토마고는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요리영화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내가 봤던 요리영화들과는 다루는 요리도, 장면의 느낌도 확연히 달랐다. 그동안 영화에서 깊게 다루지 않았던 남미 음식이 제대로 나오겠구나 싶어 기대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어떤 음식이 나올까 나름 상상해보았는데, 생각나는 건 고작 두껍게 썰어 거칠게 구운 스테이크와 브라질의 국민주 카샤샤(Cachaca)로 만든 카이피리냐(Caipirinha) 칵테일 정도였다. 이 영화는 재소자의 신분으로 감방 동료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한 남자의 현재와 시골에서 상경해서 대도시에서 요리를 배우던 과거가 교차하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처음엔 어떤 게 현재이고 과거인지 파악이 안됐지만 감..
Morning Cappuccino 아침에 카푸치노 영화 속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 장면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아침에 가장 바쁜 곳이 바로 coffee bar가 아닐까. 카페라는 단어보다도 커피 뒤에 BAR를 붙이는 것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문화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집 근처 커피 바에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후 바 앞에 서서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고 돈을 내고 나간다. 회전율이 엄청 빠르다! ㅋㅋ 이 나라에 처음 갔을 때 그 모습이 꽤 신기했었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나도 아침마다 커피 바를 들러 에스프레소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에스프레소는 라떼나 카푸치노 등 커피 베리에이션을 만드는 재료쯤으로 생각했었는데, 비로소..
영국 토스트 2010년 개봉작 원제 Toast 영화 는 영국 유명 푸드라이터 나이젤 슬레이터(Nigel Slater)의 동명의 자전소설(toast: The Story of a Boy's Hunger)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나이젤 슬레이터는 쉐프이자 작가이고 방송인으로서 영국 내에서는 유명인이다. 그는 1988년 「마리끌레르」에서 푸드 라이터로서의 경력을 시작했고, 1993년부터 17년 동안 「옵저버(The Observer Magazine)」지에 음식칼럼을 연재했으며, 「토스터」를 비롯해 「텐더 1부:요리사의 채소 텃밭」, 「텐더 2부:요리사의 과일 정원 안내서」, 「정말 빠른 음식」, 「주방일기」 등의 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그는 BBC의 요리 프로그램의 간판 진행자로..
나는 술을 좋아한다기보단 즐긴다는 표현에 더 적합한 사람이다. 그냥 술이 좋아서, 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마신 적은 없다. 그리고 '술의 맛'을 알기엔 아직 경험도 부족할뿐더러 미각 또한 초보자 수준이다. 하지만 술과 음식의 페어링 즉, 음식과 함께 먹었을 때의 기분 좋은 조화는 안다. 웬만해선 취하지 않는 건강한 간과 집에서 쓰러질지언정 남들 앞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부모님께 물려받았음에도, 예전에는 술을 즐기지 못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자리를 몇 번 참석하고 나선 술에 대한 참맛을 느끼기도 전에 질색하게 되었다. 사진출처 en.wikipedia.org 술을 즐기게 된 건 최근이다. 몇 년 전 아일랜드에서 기네스에 푹 빠져 살다가 온 이후로, 술에 대한 기본 지식을 ..
줄리앤줄리아에 나오는 음식 총정리 1편 bon appétit! Fish Meuniere with Browned Butter and Lemon 생선 뫼니에르 뫼니에르는 밑간한 생선에 밀가루를 묻혀 버터를 녹인 팬에서 지져내는 요리법을 뜻하기도 하고 브라운 버터에 다진 파슬리, 레몬을 넣어 만드는 소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뫼니에르는 프랑스어로 '밀러 씨의 부인(miller's wife)'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밀러는 제분소, 방앗간이란 뜻이니 '방앗간의 아내'쯤으로 해석되겠다. 밀가루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어느 방앗간의 아내가 생선 뫼니에르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음식의 속뜻이 참 재미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도 갈치를 구울 때 겉에 밀가루를 묻혀 기름 넉넉하게 두른 후 지져낸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일본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개봉작 원제 海街 diary_Our Little Sister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2013년 개봉작 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의 작품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의 화두 역시 '가족'이다.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고에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는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이복 여동생인 스즈를 만나게 된다. 아픈 아버지를 돌본 사람이 아버지의 셋째 부인이 아니라 스즈라는 걸 알고 있는 사치는 엄마, 아빠가 모두 돌아가시고 새엄마와 함께 살아야 할 스즈가 걱정되어서 자신들이 사는 작은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스즈는 아버지가 살았었던, 그리고 자신의 이복 언니들이 사는 카마쿠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사치,..
덴마크 바베트의 만찬 1987년 개봉작 원제 Babette's Feast 은 요리영화 마니아인 내가 모를 리 없는 유명한 영화였는데, 옛날 작품이라는 편견에 밀려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주듯 독특하게 시작되는 도입부에서부터 집중되기 시작하더니 좋았던 첫인상에 보답하듯 집중도가 중반 이후부터는 점점 더 고조되면서 마지막 씬까지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길게 남는 여운 때문에 와인 반병을 마시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덴마크에서 영화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로 유명한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본명: 카렌 브릭센)의 네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이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2003년 번역, 출간되..
일본 앙: 단팥 인생 이야기 2015년 개봉작 원제 あん 이 영화는 봄이면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일본의 예쁜 마을에서, 작은 도라야끼 가게를 운영하는 센타로와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도쿠에 할머니 그리고 단골 소녀 와카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원작, 두리안 스케가와의 장편소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야기임에도 일본 내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칸 영화제에까지 초청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갓 구워진 따뜻한 빵 두 쪽 사이에 팥소를 채운 도리야끼처럼 따로 떠돌던 세 사람의 인생이 한데 모여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스포없는 간략한 줄거리 소개 센타로는 ..
프랑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년 개봉작 원제 Attila Marcel 은 애니메이션 의 감독, 실뱅 쇼메의 첫 실사영화이다. 실제 사람이 등장하지만 스토리나 화면 구성은 영락없이 동화적인 면모를 보여 실뱅 쇼메 감독의 유니크함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스포없는 간략한 줄거리 소개 폴은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잃은 채 두 이모들과 함께 살아간다. 피아니스트를 꿈꾸지만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치는게 그의 일상의 전부이다. 아무 감정없이 피아노를 치는 폴은 마치 태옆을 감아야만 소리를 울리는 오르골처럼, 타인에 의해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무의미한 일상을 이어가던 폴이 자신의 아파트의 다른 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우연히 들..
독일, 영국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 2014년 개봉작 원제 The Grand Budapest Hotel 나의 영화취향은 극단적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거나 철저히 환상적이거나. 영화가 둘 중 하나에 충실한 경우 예외없이 내 인생 영화에 오르곤 한다. 그런 영화는 반복해서 보길 좋아하고 주변인들에게 추천하며 원작인 책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은 영화를 고르는 내 두가지 극단적인 취향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영화였다. 이건 마치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라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색을 기가막히게 활용했다. 기묘하고 흥미로운 내용에 색의 마법을 부리니 환상미가 터진다. 이 영화는 한 여자가 책 한권을 들고 저자의 동상이 있는 올드 루츠 공동묘지를 찾는 장면에서부..